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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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혈(5)
2011년 05월 06일 12시 22분  조회:5752  추천:42  작성자: 김송죽
 

대하력사소설 

           반도의 혈(穴)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2부

5.       

   7월이 다 가고있는 어느날. 서일은 뜻밖에 귀한 손님을 맞이했다. 서울에서 신채호가 찾아 온 것이다. 친구간에 그립던차 서로 만나는지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아니 여기루는 어떻게 돼서?》

  《옥저의 옛 땅이 대체 어떤모양인가 볼려구요.》

   신채호의 대답이였다. 선생들은 모두 그가 자료수집을 하느라 지방고찰을 나선 사학가인줄로 알았다. 서일은 선생들에게 그가 바로 여러분이 매일 보고있는 大韓每日申報의 주필 신채호라고 알려주었다. 신문사 기자라면 공개적으로 채방을 다니는 것이 직업이니 구태여 신분을 감춰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경원학교 선생들은 모두 명망있는 신문사의 기자가 학교를 찾아온데 대해서 고맙게 여기면서 그를 각별히 친절스레 대했다.

  《나는 원산서 배로 청진에 이르러 거기 도청에 들렸다 곧바로 예까지 오는 길입니다. 채방도 채방이려니와 이번에는 주로 구적(舊蹟)을 찾아보자구 떠났지요.》

   서일은 물론 박기호나 경원학교의 선생모두가 그의 말을 곧이들었다.   신채호는 얼마전에 이태리의 독립운동지도자 삼걸(三傑)의 업적을 찬양하는 전기의 서문을 써서 신문에 팔표한바있다. 구절구절 깊은 감명을 주는 그 글은 지각이 모자라는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분발시키는 활력소와도 같은지라 지금도 많은 사람의 입에서 회자(膾炙)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것을 쓴 작자 신채호 하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지경 심목중에 너무나 친절스레 다가오는 이름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선생들은 지어 호기심에 그보고 이번에는 어떤 글을 쓰려는가고 무람없이 캐묻기까지 했다.

   《이 지방에서 살았던 여진(女眞)의 두령을 써볼가합니다.》

   한데 이런 소리를 듣고 어떤 선생들은 아니 여기서 언제 녀진족이 살았더냐고 머리를 기웃거리는것이였다. 제 고장의 력사건만 분명 모르고있는지라 신채호는 그들에게 함북도가 옛날에는 옥저(沃沮)의 땅이였는데 4군(4四郡)을 두었을 때는 현토군(玄菟郡)이라했고 그 뒤에는 삭방도(朔方道)라 불리여 여진(女眞)의 근거지였다는 것과 옛이름은 영길도(永吉道), 함길도(咸吉道), 영안도(永安道)였고 그때도 의연히 도청소재지는 청진(淸津)이였다는것을 알려주었다.

   신채호는 과연 력사를 연구하느라 다니는 사람같아보였다.

   그러나 그가 불원천리하고 찾아온 것은 신문보도감을 얻자거나 력사연구를 하기위해서가 아니였다.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되지 않을 한가지 극비밀의 일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신채호는 서일과 박기호만있는 앞에서 고종황제의 퇴위와 이로 인하여 서울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신문들에 보도가 나갔으니  잘알고있을거라면서 요즘은 서울이 내내 음침한 분위기에 휩싸여있는것이 마치 폭풍우의 전야와도 같다면서 서울시민의 폭동에 관해서 쓴 7월 21일자 첫기사는 바로 자기가 쓴것이라 덧붙여 알려주었다.

  《그날 김규식조교역시 멋지게 잘 싸웠지. 시위대를 불러내여 시민폭동에 합세케했으니 나라를 위해서 공을 세운겁니다. 그는 왜놈이 죽도록 미워 이를갈면서 지금도 서선생이 임진왜란때의 일을 거들어 후세에 이름을 남긴 의병장들을 따라배우라 일깨워준걸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 앞에서 자기는 아무때건 의병장이 되어 크게 싸워보리라 맹세까지 했거든요.》

  《거참 반가운 소식인걸! 만나거든 전하시오, 내가 축하하더라구요.》

   박기호가 서일의 말끝을 받아서 그한테 물어보았다.

  《한데 요즘은 신문에 소식이 막히는 것 같은데 대체 웬 판국입니까?》

  《말두마시오. 통감부 마쯔이로 경무총장이 각 신문사 사장과 발행인을 불러 회를 소집하고는 뭐라했는지 압니까. 한일관계가 소격(疎隔)케 하거나 지방에서 항일무력활동을 하는 것을 의병이라 칭해서는 아니된다느니 은연중 동정하여 이를 선동해서도 안니된다느니 하면서 주의사항 네가지를 시달한겁니다. 그러니 어디 사실진상을 제대로 까밝힐수가 있어야지 원.》

   신채호는 언론계에 대한 탄압이 점점 더 가혹해가니 일구란설이라면서 통감부가 방금 내온 신문지법(新聞紙法)이라는게 어떤것인가 좀 보라했다.

   

  <<내부대신은 신문지가 안녕질서를 방해하거나 풍속을 괴란(壞亂)하는 자로 인(認)하는 시는 기(其) 발매반포(發賣頒布)를 금지하야 차(此)를 압수하며 또는 발행을 정지 혹은 금지함을 득(得)함.(21조)>>

   신채호는 또한 이또오 히로부미는 황성신문(皇城新聞)을 탄압하여 그 신문이 본래의 취지를 잃게 만들어놓고는 지금은 또 외국인이 자유로 꾸려 온 大韓每日申報마저 눈에 든 가시같이 여기면서 없새치우려고 갖은 수단을 다쓰고있는 중이라했다. 그러니 이 신문역시 서일이 예견했던 바와 같이 십분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였다.

   신채호가 경원에 온것은 서울소식을 알려주자는게 아니요 자기들의 신문이 당하는 처지를 공소하자는것도 아니였다. 그렇다면 극비밀적인 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인즉 서일을 신민회(新民會)에 가담시키는것이였다. 신채호는 서일과 함께 그의 집에서 밤을 지내면서 조용히 이 말을 끄집어냈다.

   신민회란 保護條約이 체결되였음을 듣고 지난해에 미국으로부터 귀국한 안창호(安昌浩)가 이달들어 동지 이갑(李甲), 전덕기(全德基), 양기탁(梁起鐸), 안태국(安泰國), 이동녕(李東寧), 이동휘(李東輝), 조성환(曹成煥), 신채호(申采浩), 노백린(盧伯麟) 등과 함께 조직하고있는 비밀결사였는데 그 목적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각방면으로 진흥운동을 전개하여 국가의 실력을 발휘하자는것이였다. 조직방법은 매우 주밀하였는바 회원간에는 두사람이상이 서로 알지 못하게 되어있었다.

   서일은 자기의 생명과 자산(資産)을 회의 명령에 의하여 납공하기로 서약하고 주저없이 이 비밀조직에 가입했다.  

   이틑날 아침 일찍이 일어난 신채호는 희연이가 오심(惡心) 구토를 하는 것을 보고 저으기 놀래며 왜 저러느냐 빨리 병원에 가 보이지 않고 되겠느냐했다. 서일은 제 병인데 뭐 하면서 대수로와하지 않았다. 딸애가 3살먹으니 처가 임신을 해서 입덧이 나 그런다는 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색시얻어 장가갈 궁리는 전혀 하지도 않는 신채호라 그런 지식은 깜깜 무지였던것이다. 서일이 말해서야 비로소 깨달음이 있게되는지 그는 빙그레 웃더니 서일보고 전에 들을라니 서선생은 2대독자라 하는 것 같던데 이천서씨(利川徐氏)네 가문에는 어떤 인물이 났느냐고 물었다.

   이에 서일은 고려공신 서희(徐熙)가 있지 않느냐, 자기는 바로 그이의 36대손이라 알려주었다.

  《아, 그렇군요! 서희라....내가 고려사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거란의 군사가 협박해 옴에 왕이 땅을 할양하여 강화를 하자하니 그렇게 하는 것은 만세의 치옥이라며 반대해 나섰던 분이 아닙니까. 다른 대신들은 적이 두려워 담판하러 감히 나가지 못하자 <감신수불민감불유명(臣雖不敏敢不唯命)>이라 하여 자청 대담히 나가 담판석상에서 설전으로 적장을 굴복시켜 결국 유리한 강화를 맺은 장군말입니다.》

  《그렇소. 바로 그분이 나의 조상이 되는거요. 거란이 80만 대군을 몰아와 무조건 항복을 강복(降伏)하자 성종은 곧 군신회의를 열어 협의했다누만. 헌데 대개 항복하자고 하면서 서경이북의 령토를 할양하고 강화하자는 공론이 분분했다는가. 선종은 원래 학문을 숭상하여 문화정책을 중요시한 왕이라 백성을 병화에 휩쓸어넣지 않으려는데서 차라리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는 곡식을 백성들이 마음대로 갖게 하고 그래도 남은 량곡은 대동강에 버리라 명령했다오. 이럴때 그분이 나섰지. 왕을 찾아 감히 론계(論啓)하기를 <먹을것이 족하면 성을 지킬 수 있고 싸움에 이길 수도 있나이다. 싸움의 승패는 강약에 있는것보다 기회를 잘 포착해 움직이는데 있사온데 어찌 곡식을 버리려하나이까? 더구나 곡식은 백성의 명맥인데 적에게 리용되는 한이 있더라도 강에 버림은 천의에 어긋나는 그릇된 소행인줄로 아룁니다>고 해서 왕이 그것을 중치케했다오.》

  《론계가 옳았지!》

  《그분은 계속 결전을 주장하면서 만약 강화를 하더라도 싸워 유리한 립장에서 교섭해도 늦지 않다고 상주해 왕을 깨우치게 하셨다오.》

  《대바른 주장이였지. 나라에 그런 충신이 없이야 어찌 기둥이 바로서리오. 과연 좋은 분이였지! 고금 우리의 력사에 명장, 명신이 많았으나 한치의 혀를 무기삼아 소국이면서 대국을 상대로 조금도 굴하지 않고 그 입구의 비리를 통박하여 그자들로 하여금 회군케 한 실례야 찾기 힘들지요. 안그렇습니까? 서희의 기지활달한 외교술이 아니였다면 80만대군을 몰고 달려드는 대조귀인(글안의 부마)의 그 오만무례한 강복을 물리칠수 없었을것입니다. 안그렇습니까? 제 국토를 지켜내자면 외적과는 의례 그렇게 강하게 맛서야 하는건데 지금의 대신들을 보면....》

   신채호는 력대의 충신에다 지금의 이완용, 손병희 따위의 5적신 7적신을 비기면서 나라대권을 쥐고있는 그자들의 비겁과 무능을 한탄했고 오로지 자신의 안녕만을 바라고 매국배족을 일삼는 더러운 그 행위에 치가 떨린다면서 저주했다.

  《그놈들을 어떻게 진멸을 못할가?》

  《그러게말입니다. 년초에 집단암살이 성공했어야할건데...》

  신채호는 라철, 오기호등의 5적암살행동이 실패한 것을 맹랑해 하면서 그때의 성원중 몇은 지금도 경찰에 붙잡히지 않고있으니 그네들은 아무때건 이제 다시행동하리라 믿는다고 했다.

  《그렇구말구. 꼭 그럴거우.》

   서일은 말해놓고 웃었다. 신채호가 왜 그러느냐 묻길래 그는 탈주자중의 한 사람인 이홍래가 바로 자기 집에서 근 서너달을 숨어 지내다가 얼마전에 연해주에 건너갔노라 알려주면서 그는 참을성보다 열혈이 더 끓는 사람이니 형세가 새로워진것을 알면 이제 곧 다시건너올거라했다.

   그의 추측은 신통히도 들어맞았다. 신채호가 서울로 돌아가자 바로 이틑날 이홍래가 돌아온 것이다. 연해주에서 만주로 건너가 거기 한인동포가 많이 모여 사는 용정촌에서 지내다가 거기서 고종황제가 적신들의 억압에 못견디여 퇴위하고 그로 하여 서울시민들이 분노해서 폭동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는 것이다.

   《신협약이 맺어진건 아십니까?》

   《알지. 알구말구. 알구서왔는데.》

   《서울서 일어났던 시민폭동은 그만 갈앉고말았답니다. 신채호선생이 우리 집에 왔다가 하루밤지내구는 방금 어제 돌아갔는데 그가 그럽디다.》

   서일이 알려주자 이홍래는 아 그런가 한발짝만 일찍왔더면 함께 동무해서 서울로 갔을건데 하면서 며칠 쉬라고 권하는것도 마다하고 겨우 하루밤을 지내고는 부덕부덕 떠났다. 박대하를 찾아가 꺼져가는 의병운동을 어떻게 다시일으켜보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반일을 하다가 일제의 탄압에 눌려 그만 주저앉아 재기를 시도하면서 시기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모든 반일투사의 감정을 대표하기도했다. 

   한편 적대측은 한국민의 이러한 반일기세를 꺾어보려고 갖은 애를 다 쓰고있었다. 

   통감부. 이또오 히로부미는 부통감 소네 아라스께와 함께 하세가와사령을 불러다 대책을 강구하고있었다.

   《당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가지. 첫째는 배일의 냄새가 나는 보수론자는 도태시키는 것이요. 통감부의 총무장관, 농상공무총장, 경무총장이하 일본인관리는 한국의 궁중, 정부 각 부의 차관을 비롯하여 중요한 직위에 초빙되여 직접 시정개선을 담당하는 것이고 둘째는 일체의 반일행위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지속적인 탄압을 가해서 그 기세를 여지없이 꺽어버리거니와 아예 뿌리까지 쑥 뽑아버리는것이요.》

   이또오 히로부미가 굳어진 낯색에 살기까지 피여올리면서 집요한 투로 알려주었다.

   《통감각하! 첫째는 이제 곧 집행해야 할 정책이겠지만 둘째야 우리가 이미전부터 해온것이 아닙니다.》

   하세가와사령은 어딘가 애매한 듯이 변명쪼로 말했다.

   《하세가와사령, 내 말의 뜻을 모르겠소?... 문제는 그렇게 해왔는가 안해왔는가가 아니구 효과가 어떤가 그거란말이요. 그래서?....어디말해보오.》

   《아, 그렇습니까. 각하의그  말씀 저를 깨우쳐주는구만요! 과연 그렇습니다. 효과를 봐야지요! 행동을 어떻게 취했건 효과가 없으면야 그건 헛짓에 불과하지요. 지금 보면 우리 손에 의하여 분쇄되여 그 조직이 이미 소실된 것으로 여겨온 의병대였건만 귀신같이 다시살아나 기세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은것입니다. 과연 모진 자들이지요.》

   하세가와사령이 이같이 스스로 반성하는 태도로 나오자 소네 아라스께부통감이 그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하세가와사령! 좀 더 구체적인걸 말해줄 수 없겠소?》

   《그러지요. 지난해에 일어난 순창의병과 홍천의병 그리고 산남의병을 볼 것 같으면 그 도당의 괴수들이 죽어버려 대오는 해산된 것으로 인정해왔는데 근일들어 일부가 재기를 하고있습니다. 특히 산남의 무리경우 총수였던 아들이 죽으니까 아비가 대신 총수로 되여서 복수를 다짐하고 나오는지라 이 읍 저 읍을 전전하면서 기세를 부림이 과연 대단합니다. 얼마전에  청하의 우리 군이 그의 손에 손실을 입었거니와 청송과 신성에서도 습격을 련속받아 그같은.....》

   하세가와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말하다 보니 그만 자기의 실수를 다 털어내고말았다.

   《가만! 그 산남의 그자는 대체 누군데?》

   이또오 히로부미는 귀담아 듣더니 이마살을 찌프려 가며 물었다.

   《각하! 산남의병진의 총수는 환갑이 이미 지난 정환직이라는 관리입니다. 전에 경주부윤과 중추원의관을 지낸바가 있은걸로 조사되고있습니다.》

   《그도 관리였단말이지, 오!....》

   하세가와의 보고는 이또오 히로부미로 하여금 <배일의 냄새가 나는 보수파를 도태시켜야 한다>는 그의 결책을 더욱 굳히면서 한국군대를 빨리 해산시키게끔 부채질하기까지다.

   이에 앞서 통감부는 전에 벌써 군사비를 절약한다는 구실로 군제를 개정하여 군대수를 줄이였다. 그 후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참장(參將)이하 각 군관이 서울에 주재한 자가 336명, 병사가 9,640여명이였고 각지방에 흩어져있는 진위대장병이 4,070여명뿐이였는데 고종황제의 양위문제로 군대안에는 분격(忿激)한 기분이 한창 감돌고 있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군대를 해산시킨다는 것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였다. 그리고 이 일은 이미 극비로 지켜온 일본의 정책으로서 이제 남은건 시간문제였다.

   하다면 일본은 왜 이것마저 해산시키려할가?...한 것은 그것이 비록 미약하기는하나 민족적인 반일항쟁력량으로 변할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각하! 한국군대를 당장 해산시킨다는 말씀이시죠?》

   하세가와는 통감이 말을 꺼내놓자 돌연함을 느끼였다. 

   이또오 히로부미는 그를 향해 그렇게 하게되는 리유를 설명했다.

   《이 군대를 보면 지휘관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농민이거나 아니면 평민출신의 자식들인거요. 그러한즉 하세가와사령, 이네들이 민족적으로 각성해서 반일을 한다면 그래 총구멍을 어느쪽으로 돌릴 것 같소?》

   《거야 더 말할 것 있습니까. 우리 쪽에다  돌리겠지요.》

   《바로 그렇단말이요. 이번의 서울시민폭동을 보지 않았소. 개별적이기는하지만 바로 그같이 되였단말이요. 하세가와 사령, 내 말이 어떤가?》

   《예, 각하! 각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세가와가 머리숙여 수긍하는것을 보고 소네 아라스께가 동을 달았다.     《한즉 우리는 서둘러 손을 써야하는거요.》

   이또오 히로부미는 머리를 가로젓고나서 그의 말에 수정을 가했다.

   《손을 쓰되 우리가 직접 먼저써서야 안되지. 절대루. 우리는 우선 국왕을 움직이게 만들어야 하오. 군대해산은 바로 국왕의 명령에 의해서 단행되는것으로 백성들이 인식하게끔 만들어놓는단말이요.》

   하세가와는 물론 소네 아라스께마저도 이또오 히로부미의 계략에 다시한번 탄복했다.

   모략이 이쯤서자 이또오 히로부미는 한걸음 나아가서 이완용과 함께 군대해산을 밀모하기 시작했다. 그는 국왕(순종)에게 군대정리사업을 해야 한다면서 왕의 명령인 <<칙어>>를 만들게끔 든장질했다.

   일은 아귀가 착착 맞아갔다.

   이런차 이완용이 군대해산에 관련해서 보내는 <<회답서>>가 이또오 히로부미통감의 손에 들어오가까지 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법제개혁을 위하여 공포한 칙어를 받들고 군대를 해산시킬 때 인심이 동요하지 않게 예방하며.... 또는 칙어를 어기고 폭동을 일으키는 자들이 있으면 그것을 진압할 것을 각하에게 의뢰한다는 황제페하의 칙서를 받아두는 것이 좋겠다는 것을 알리는바이다.>>

 

    이로써 일본은 폭동이 일어날시 이를 진압할수 있는 합법적권한을 얻을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주둔 일본군총사령 하세가와는 무력을 각 병영의 주변과 서울시내의 요소요소마다에 급급히 배치하였다.

   통감부가 한국군대 강제해산에 관해 작성한 구체계획은 이러했다.

 

   <<1. 제1차로 서울에 있는 시위보병 5개 대대, 기병대, 포병대, 교성대대를 해산시킨다.

     2. 제2차로 지방에 있는 진위대 8개 대대를 해산시킨다.

     3. 제3차로 헌병대, 려단사령부, 연성학교, 치중대, 홍릉수비대, 군악대를 해산시킨다.

     4. 남겨둘 관청들과 군대는 다음과 같다.

     군부, 위생원, 시종무관부, 배종무관부, 륙군병원, 륙군감옥, 군기창, 무관학교, 유년학교, 시위보병 1개 대대(제2련대 제2대대로 지정함).

     8월 1일 서울에 있는 군대들의 해산식을  거행함에 있어서 각 부대에 배속된 일본교관은 병기, 탄약을 압수하고 대렬을 인솔하여 오전 10시에 훈련원에 집합할 것.

     이날 비우게 될 각 부대병영은 부대배속일 본조교(하사관ㅡ인용자)의 안내로 일본군대가 그를 접수하고 정문만을 열고 무기고, 탄약고, 식량창고에 보초를 배친한다.>>

           (<<일한합병소사>>(일문), 이와나미서점, 1966년판, 204~205페지)    

    먼저 전투부대를 해산하여 그 전투력을 말살한 다음 기타부대를 없새려는것이였다. 무기 등을 빼앗는 것은 한국군대의 전투력을 마비시키기 위함이였다.

   하세가와사령은 이또오 히로부미로부터 이번 기회에 실력을 보이라는 암시를 받은지라 한결 용기가 솟구쳤다.

   《일로전쟁을 멋들어지게 해냈을라니 내가 이까짓것 하나 못해낼가.》

   자신만만해 하는 그였다.

   함북도 경원에 8월 1일자 大韓每日申報가 도착한 것은 3일후. 서일은 신문에 실린 왕의 <<칙어>>를 보고 몹시 놀랬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나는 오직 국가가 다난한 때를 당하여 경비를  절약하고 그것을 후생에 리용하는 것이 오늘의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 군대는 고용병으로써 조직되였기 때문에 상하가 일치하여 국가의 방위임무를 다할수 없다. 나는 여기로부터 군대를 혁신하고 사관양성에 힘을 넣어 앞으로 징병법을 발표하여 공고한 병력을 구비하려고 한다. 나는 여기서 유사시에 황실의 수위에 필요한 자들만 골라두고 기타는 모두 일시 해산시킬 것을 명령한다. 나는 그대들의 오랜 기간의 공로를 생각하여 특히 그 위계에 따라 은사금을 수여한다. 그대들 장교, 하사, 병졸들은 나의 뜻을 받들어 자기 사업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서일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신문을 동댕이치며 웨치였다.

   《에잇, 썩어빠진 왕님아! 네놈이 환장을 했구나, 환장을 했어!》

   곁사람들이 그의 격노한 모양을 보고 더 놀랬다. 여직 한번도 그가 이렇게 까지 흥분하면서 격분하는 것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국왕을 마구욕지걸이하니 아니 저 선생이 저러다 경치면 어쩔라구 하면서 걱정하고 마음을 조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감히 나무람하거나 제지하려 드는 자는 없었다. 여지껏 무분별하게 덤빈적이 없고 서일은 또 절 때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믿어들왔기 때문이다. 일단 주견을 세우면 그 단호함이 대쪽같아 그 누구도 감히 꺾지 못못한다는것도 잘아는 그들이였다.

   《경비를 절약하고 후생을 위하면 그래 군대를 해산해야 하는가? 리치에 맞지도 않는 소리지!》

   《내 생각에도 그러해. 그건 순 구실이다!》

   박기호의 감정이 그와 딱 맞게 흐르고 있었다.

   《국가의 방위임무를 다할수 없으면 다하도록 훈련을 시키거나 조치를 대여 다하도록 강하게 만들어야지 그러지는 않고 군대를 해산해서야 되는가? 지금의 군대로는 그래 혁신하지 못한단말인가? 사관을 양성못한단말인가? 전혀 맞지도 않는 리유지. 앞으로 징병법을 발표하겠거든 할게지 군대는 왜서 해산하는가말이다. 안그런가?》

   《그것도 리유가 전혀 맞지 않는 소리다. 그리고 또 유사시라는건 대체  어느때를 말하는건가? 굶주린 이리떼 궐안을 들여다보면서 혀를 날름거리는데 이때를 내놓고 그래 어느때에 수위가 필요하단말인가?》

   《나젊은 임금님이 벌써 로망을 하느냐? 나라망쳐먹느라 환장했지!》

   서일의 말에 모두들 하하하 웃었다. 그리고는 인차 저마끔 사색에 잠긴다. 그저웃어만넘길 일이 아니였던 것이다. 새임금(순종)은 왜 등극하자마자 제 나라의 군대를 급급히 해산시키는가? 과연 무엇대문에? 이것 역시 일본의 작간이 아닐까?....모두들 정신차리면서 왈가왈부 떠들기 시작했다.

   

                       추풍이 소슬하니

                       영웅의 득의시(得意時)라

                      장사가 없을소냐

                       구름같이 모여든다          

                       어화 우리 장사들아

                       격중가나 불러보세

 

                       한양성중 바라보니

                       원쑤놈이 왜놈이요

                       원쑤놈이 간신이라

                       삼천리 우리 강산

                       오백년 우리 종사

                       무너지면 어이할까

 

                       의병들아 일어나서

                       왜놈들을 쫓아내고

                       간신들을 타살하여

                       우리 금상 봉안하고

                       즐기고 노래하세

                       우리 대한 만만세라....

 

    경원거리에서 목청을 뽑아가며 이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모두를 그는 의병을 다니다 머리에 총상을 입고 실신하거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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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성자 : 김송죽
날자:2011-10-16 04:16:25
추상호선생:
보낸 글 잘 보았습니다. 대구에 백포종사 서일 기념사업회가 있다니 과연 반가운 소식입니다. 여러분의 핍진 노력과 열성으로 일후 연구사업이 잘되여기를 기원하면서 제기한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합니다.

(1). 서일과 신채호지간에 자주만남은 없었지만 인연은 자못 깊었습니다. 그 원인 첫째는 신채호가 서일이 제일 중시하고 관심하면서 열독해온 신문의 기자였다는 것. 둘째는 어려서 자기가 존경했던 선생이 통감부통역관이였다는 그 정체를 신채호가 말해 알게됨으로 하여. 그리고 서일이 극비밀조직이였던 신민회에 가담하게된것도 싵채호가 직접 끌었기 때문.

최익항(崔益恒)은 독실한 대종교도였거니와 교내에 지도급인물이였길래 서로 잘알게된겁니다.

(2), 신채호와 서일이 서로 아는 사이인것만은 사실. 서일의 경성방문, 신채호의 경원방문 등은 소설로서의 허구임을 밝힙니다.

(3). 이홍래(李鴻來)는 그저 弘來라고도 불렀는데, 같은 함경도사람으로서 소설에서도 알리겠지만 대단히 활약적인 사람이였습니다. 라인영 등 사람들과 함께 5적암살을 획책했다가 실패, 渡滿하여서는 軍政府를 組織해 中心人物활약하다가 1919년 북만 할빈의 도외(道外) 17街道에서 일경과의 교전중 희생되였습니다.

이상것들은 실재한 력사사실들로서 현존 자료들에서 찾을수 있습니다.

11년전인 2002월 말, 내가 할빈에 있을적에 서일의 손자 萬燮翁이 한국에서 나를 찾아와(내가 김좌진전을 쓴 작자임을 이미 알고) 제 할아버지 서일에 관한 책도 써달라면서 자료들을 내놓았습다. 그때 내가 특히 서일과 신채호사이문제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그것이 기성사실로 확인된바있습니다.
그 썩 먼저 나는 나의 할아버지생전에 그에 의해 독립군에 관한 력사자료들을 적잖게 수집했었는데 그 가운데 대종교인물로 김헌, 윤세복, 서일등과 김좌진, 조성환 등 여럿있었습니다. 수집노트 모두 다섯권. 그런것을 “문화혁명”때 반란자들의 손에 빼앗겨 분실됐고 나의 어머님은 그 자료들을 감춰준 것이 죄가 되어 혁명파ㅡ 홍위병들께 “보황파”로 몰려 숱한 릉욕을 받았는바 그 심한 마음의 상처는 아믈지 안은채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이 점은 내가 인터넷에 올린 글 한편만 읽어봐도 알게될겁니다.
관련글:
<<류연산, 이 못난 사람아>>,
<<내 사유와 잊을수 없는 일>>,

추선생도 알겠지만 나는 지금 백포종사 서일장군일대기를 잇터넷에 발표중입니다. 근 10년철이 되어옵니다. 집필이 아직 채 끝나지 않아서 보다십히 불완제품입니다. 하지만 이 력사소설에 사용된 력사유관자료들은 허구가 아닌 실재한것들임을 밝혀둡니다. 나는 주로 실재한 력사를 다루기즐기는 장편작가입니다. 이점 믿어주십니오.
문의하신바, 나의 소설에서 력사에 유관되는 자료들을 기념회의 논문집과 자료집에 실어도 됩니다. 그러되 사용시 출처를 딱히 밝놓기 바랍니다. 책임문제가 따르니까요. 이점은 말하지 않아도 아실겁니다.

나의 이 대하력사소설 <<반도의 혈>>은 모두 3부인데 제1부는 연변소설학회인터넷에서 이미냈고 제2부, 3부는 보다싶히 조글로에 발표중입니다. 이제 10절만 더 쓰면 모두 끝.
추상호선생님, 앞으로 종종 련락합시다.
김송죽 중국 북경에서


1   작성자 : 한국 대구의 추상호입니다.
날자:2011-10-14 13:56:49
저의 전화는 010-5437-5776 입니다. 메일은 bokup@hanmail.net 입니다. 김송죽 선생님 - 전화나 메일로 많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 독립군 총재 백포 서일 기념사업회에서
올 해 백포 서일 총재의 기념 논문집과 여러 자료집을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김송죽선생님의 글을 저희 기념회의 논문집과 자료집등에 실을 수 있는지를 첫 번째 여쭙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몇 가지 사실에 대한 자료들을 알고 싶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래의 몇가지 내용을 질문드려 봅니다.

... - 서일과 신채호 혹은 최익항의 관계,

- 서일의 신민회 가입 사실,

- 서일의 경성방문(신채호와의 만남) 사실,

- 신채호의 경원(서일) 방문 사실

- 서일과 이홍래의 친분 관계...."

혹 마음이 앞서서 무례하게 생각되시면 나중에 꾸중을 달게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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